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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i Dmitriyevich Kuznetsov:니콜라이 쿠즈네초프.1850 -1929> 구애.

▪러시아 이동파 화가이자 상페테르부르그 예술아카데미 교수로 주로 초상화와 쟝르화를 그렸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고 재능이 발견되었다. 1876년 황립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학생이었지만 종종 집안의 장원에 그림을 그리려고 결석이 잦았다고. 집안의 바램을 저버리고 노동자계급의 처녀와 결혼을 한 것도 이때라 한다. 1880년 졸업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시하며 주문도 받았다. 챠이코프스키와 Élie Metchnikoff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는 아브람체포의 정규 일원으로, 그의 레슬러같은 크고 건장한 몸매로 인해 다른 화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었다.(아래)
쿠즈네초프. 빅토르 바스네쵸프 작.

1889년 사고로 목발을 짚게되며 그는 저택의 스튜디오에서만 그림을 그리게 된다. 4년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스튜디오를 Odessa로 옮기고 전시회도 연다. 이때 황립예술학교의 교수직을 맡았다. 1900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Peredvizhniki(이동파)에 참여한다. 파리를 비롯 유럽에서 활발한 전시활동도 벌였다.
1920년 러시아의 내전시에 쿠즈네초브는 가족과 유고슬라비아로 이주했고, 결국 1929년 사라예보에서 79세로 사망했다. 오페라 가수 마리아 니콜라에브나 쿠즈네초브가 그의 딸이다.
(글, 그림 출처. Wiki)
어린이 초상

Portrait of Galochka Brailovskaya.

소녀. 1891

챠이코프스키

검은 베레의 소녀. 1927

미샤의 초상. 1891

장미를 든 여인. 1918


창문가의 여인

점심식사 후

추수가 끝나고


숲에서 돌아오며. 1883

파리의 다리

구애 (시골에서의 산책). 1885

전형적인 이동파의 풍자성이 담긴 그림이다. 쿠즈네초브도 다른 사실주의 화가들처럼 아카데미의 엄격한 규칙을 벗어나 가벼운 터치로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전원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는 한편, 낭만성을 띈 산책하는 세 사람-젊은이 두명과 노파-의 감정적인 묘사에서 화가의 예리한 관찰력이 감지된다.
다소 기괴한 인상인 노파는 왼쪽에 있는 처녀의 모친으로 보이는데 진홍색 옷을 입고있다. 청년은 당시의 유행인 의상차림으로 신부감인 금발의 처녀와 산책에 나섰다. 그들이 걷는 자작나무 오솔길은 러시아 민속에서 봄과 사랑, 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다. 화가는 러시아 평민적 삶 그리고 사람들의 주변 자연과의 연계에 담긴 미를 이 그림에 발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