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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파벨 페도토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18
<파벨 페도토프 Pavel Andreyevich Fedotov: 1815 – 1852>
▪"러시아의 호가스"라고 불리는 아마츄어 화가. 페도토프는 상페테르부르그의 황실근위대 장교였다. 당시의 장교들의 풍속대로 그는 플루웃도 배우고 Academy of Fine Arts의 야간 클래스에서 그림을 배웠다. 뛰어난 재주를 보이진 않았으나 부대에서 장교나 병영의 일상을 그려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의 그림에는 은근한 풍자가 담겨있었다.
자화상.
Andrey, Grigoriy And Alexander DruzhininPavel Fedotov당시 군대 화가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지만, 페도토프는 참된 예술가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믿음에 그 직업을 마다했다. 1844년 군대를 나와 전업화가의 길을 걷는다. 군대의 안정된 수입이 없이 화가로서 가족부양까지 해야됨은 사실 부담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연필과 수채화로 시작하여 유화로 바꾸며 실력이 나아졌다. 1848년의 전시에서 어느 정도 화가로서의 가능성이 보였고, 1851년의 "장교의 청혼(아래)"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후 정신병이 심해져서 결국은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당시의 정신병원은 체벌도 하고 열악했다) 결국 37세에 사망한다. (글 출처. Wiki)
장교의 청혼.1851. Major's Betrothal⬆️이 그림은 아마도 러시아 귀족계급일 고위 장교와 상인계급의 처녀와의 결혼을 암시한다. 당시는 자본주의가 퍼져서 혈통보다는 돈이 더 중시되던 때여서, 가난한 귀족의 자제가 경제적 이득을 위해 부유한 상인의 딸과 결혼하는게 드물지 않았다. 이 때, 귀족뿐 아니라 결혼의 상대인 상인 가정도 정략결혼의 덕으로 상류사회에 접하게 되는 것을 반겼다. 아버지일 노인은 표정은 매우 흡족하다. 특히 신부감은 엘리트 러시아 살롱에 속하게 되어 매우 행복하다. 모두가 서두르는 분위기. 아랫쪽의 고양이만 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심한 유일한 존재이다. 이는 전체 장면을 풍자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매우 강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고있다. 러시아 최고의 계층에서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날카로운 비판적 주제는 러시아 황실의 검열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터이지만 페도토프는 자신의 친구나 후원자를 위한 사적인 그림을 그렸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훗날 알렉산더 2세가 즉위 후 여러가지 민주적인 개혁을 벌이는 시대가 되자 페도토프의 뛰어난 풍자의 기술은 더욱 인기를 얻었다. 브륄로프와 대조적으로, 페도토프는 러시아 화화사에서 최초로 사실주의를 보인 화가중의 하나이다. 그는 과장이나 미화없이 객관적으로, 그러나 약간의 유머를 담아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런 배경에는 페도토프가 황립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지않아 신고전주의적 화풍에 훈련되지 않은 것이 이유일 것이다. 독학의 화가로 군대와 지방에서 경험을 쌓아 그는 과거의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현재였고, 현재를 가능한 한 자신의 능력대로 잘 그려내는데 있었던 것이다.
(글 출처. 듀크대학 웹사이트에서)
까다로운 신부. A difficult bride
젊은 미망인 Young widow
귀족의 아침식사
하프시코드 앞의 즈다노비치 양의 초상.
새로운 기병대. The New Cavalier
군복을 입은 페도토프와, 부친과 여동생. 수채화. 1837
화가의 아버지.
유행을 따르는 와이프. 1849
콜레라의 탓.
Portrait Of A. P. Zhdanovich
앙콜, 앙콜. 1850
장교와 그의 조수. Officer And His Orderly
Portrait Of Elizaveta Petrovna Zhdanova
Portrait Of Maria Pavlovna Druzhin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