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파
-
50.알렉산더 페트로비치 소콜로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10:16
▪러시아의 아카데미 스타일 초상화 화가. 그의 형제 표트르와 파벨도 유명한 화가이다. 소콜로프의 부친도 유명한 초상화 화가였고, 알렉산더 브륄로프, 칼 브륄로프가 그의 아저씨이다. 18세때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했고, 2년후 황립예술학교로 진학했다. "미술가" 칭호를 받고 부친의 뒤를 이어 수채화 초상화에 전념했다. 1859년 형제인 표트르의 초상화로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881년 Peredvizhniki(이동파)에 참여한다. 여인들의 초상화 특히 마리아 마리아 표도로브나 등 황실 가족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1883년의 알렉산더 황제 3세와 왕비의 초상은 공식적인 대관식 앨범에 포함되었다. 1892-1907년에 황실아카데미에 있던 러시아 아카데미 미술 뮤지엄의 큐레이터였고, 1896..
-
49. 이반 포크히토노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00:29
정원사. 1900 우크라이나의 풍경화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활약했다. 부친은 러시아 제국의 군인으로 작위를 받었다. 그는 7살때 네덜란드 판화 작품을 모사해 집에 걸었다 한다. 모스크바의 농업대학에 다니던 중 소작농을 옹호하는 모임에 가담한 죄로 퇴학당하여 집으로 보내졌다. 1871년 오데싸 대학에 들어가 드로잉과 수채화를 배웠다. 그 때 가족과 제네바 여행을 하며 수채화 전시를 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이후 이태리를 거쳐 파리에 상주하며 Eugène Carrière(상징주의 화가) 아래 일하게 된다. 파리 살롱에 꾸준히 출품했고, 트레치코프가 그의 작품을 구매했고, 훗날 딜러 Georges Petit와 좋은 계약을 맺었다. 1881년 러시아 정부 명으로 러-터 전쟁의 종군화가로 갔..
-
42. 표도르 바실리예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2:22
▪러시아의 풍경화가로 러시아 미술에 서정적 풍경을 소개했다. 자화상. 1873(사망하던 해) 표도르 바실리예프는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 4년후 부모가 결혼했지만 그는 항상 사생아로 여겨졌다 한다. 바실리예프는 12살부터 우편배달, 사본 필사, 미술품 재생의 일로 돈을 벌었고, 부친의 사후에는 가족을 부양했다. 1863년(13세때) 바실리예프는 미술학교의 야간학생으로 다니며, 그를 돌봐준 여러 화가를 만났다. 1866년 유명한 풍경화가 쉬시킨이 그의 누나와 사랑에 빠졌고, 틈틈이 바실리예프에게 풍경화를 가르쳤고, 후에는 크람스코이, 트레치코프 등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그러나 바실리예프가 자신의 그림과 강한 경쟁상대가 되자 쉬쉬킨은 집행부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이 상을 받도록 했다는 비난도 ..
-
41. 미콜라 피모넨코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43
▪우크레이나의 화가로 이동파 멤버. 도시와 시골의 노동자 계급의 풍속화로 유명하다. 율타이드(크리스마스) 점보기 ▪이콘화가인 부친의 조수로 일하며 이콘화를 배우다가 재능이 발견되어 키에프 미술학교에 학비면제로 입학했다. 1881년 그의 작품이 황립예술학교에 보내졌고, 그는 중등학교 미술교사 자격증을 땄다. 스승의 딸과 결혼한 피모넨코는 1884년 질병과 가난으로 인해 키에프로 돌아와 사립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1901년 키에프 폴리텤으로 옮겨 일생을 거기서 교육했다. 1906년 키에프아트스쿨 창립을 도우며 거기서도 가르쳤는데,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1897년 피모넨코는 성 볼로디미르 성당 장식을 맡았고, 그 결과 '세인트 앤 훈장'을 받았다. 1899년 이동파의 정회원이 되었고, 1..
-
38. 알렉세이 코르주킨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10
▪러시아의 쟝르화 화가. 금광 시굴업자의 집안에 태어났다. 어려서 그림을 배웠지만, 젊어서 공장에 일하다가 1858년에 황립미술학교에 진학했다. 3년후 금메달을 따서 장학금을 받았으나 1863년 아카데미의 고전적 형식을 배타하고 사실주의를 선호하는 "14명의 반동 학생"에 끼게된다. 그 결과 학교를 중퇴하고 "이동파"의 회원이 되었다. 1865년 "마을 묘지에서의 문상"으로 "1급 화가"가 되고 아카데미의 일원이 되었다. 일상적 그림 이외에 초상화와 종교화, 성당 벽화도 그렸다. 코르주킨은 1881년 알렉산더 2세의 시해를 직접 보았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쇼크를 받아 남은 일생동안 건강을 회복하지 못 했다. 숲속의 농촌소녀들. 1878 타운에서 돌아옴 마을 장에서 돌아옴. 전쟁에서 돌아옴. 새들의 적...
-
37.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59
구애. ▪러시아 이동파 화가이자 상페테르부르그 예술아카데미 교수로 주로 초상화와 쟝르화를 그렸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고 재능이 발견되었다. 1876년 황립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학생이었지만 종종 집안의 장원에 그림을 그리려고 결석이 잦았다고. 집안의 바램을 저버리고 노동자계급의 처녀와 결혼을 한 것도 이때라 한다. 1880년 졸업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시하며 주문도 받았다. 챠이코프스키와 Élie Metchnikoff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는 아브람체포의 정규 일원으로, 그의 레슬러같은 크고 건장한 몸매로 인해 다른 화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었다.(아래) 쿠즈네초프. 빅토르 바스네쵸프 작. 1889년 사고로 목발을 짚게되며 그는 저택의 스튜디오에서만 그림을 그리게..
-
35. 아폴리나리 바스네쵸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11
▪모스크바의 중세경치를 즐겨 그렸던 러시아의 화가이자 그라픽 아티스트 아폴리나리 바스네쵸프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자신의 유명한 형 "빅토르 바스네쵸프"의 지도를 받았다. 그와 빅토르는 1883년부터 아브라쳄포에 살았는데, 이때 아폴리나리는 폴레노프의 영향을 받았다. 1890년 코카사스 지방을 여행하며 거대한 자연에 감동하여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1898년에 유럽을 여행했다. 아폴리나리는 러시아의 자연을 그렸고, 후에 중세 모스크바 사회상을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풍경화를 창조했다. 1899년 이동파 회원이 되었고, 후에 러시아 예술가동맹의 창시자중 일인. (글과 그림 출처. Wiki) 고향땅. Rodina. 1886. 바스네쵸프가 고향과 땅의 의미를 새겨..
-
34. 안드레이 리아부쉬킨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07
▪17세기의 러시아 평민들의 삶을 주로 그린 화가. 아버지와 형이 이콘화가여서 어려서부터 그들을 도왔다. 14세에 고아가 되었는데, 그 마을을 방문했던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 학생이 그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모스크바 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왔다. 14세의 그는 가장 어린 학생중의 하나였는데, 7년간 학교에 머물렀다. 바실리 페로프의 지도를 받았고, 19살에 그린 "농부의 결혼(아래)"을 파벨 트레치코프가 구입했다. 농부의 결혼. Peasant wedding. 1880. 1882년, 바실리 페로프 사후, 리아부쉬킨은 셍페테르부르그 황립미술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흥미를 읽고 길에서 스케치를 하는 등 성적불량으로 졸업을 못하게 되는데, 그의 훌륭한 작품을 보고 학교의 교장인 대공이 사비로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