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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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오싶 브라즈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10:19
▪러시아-유대인 사실주의 화가 안톤 체홉의 초상. 1898 브라즈는 현재의 우크레이나 지역인 오데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1891-93년 뮨헨예술학교에 다녔다. 뮨헨에서 파리, 네덜랜드로 가서 고전의 대가들을 연구했다. 유럽 미술을 접하며 배운 것이 평생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95-96년 브라즈는 셍페테르부르그 예술학교에 다니며 일리야 레핀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다음해, 브라즈는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 세르게이 이바노프 등 러시아 문화계 인물들의 초상을 그렸고, 그 중 안톤 체홉의 그림(위)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프랑스, 크리미아, 핀랜드의 풍경화도 훌륭하다. 1907-11년까지 브라즈는 프랑스에 머물렀기에, 프랑스미술의 발전 동향에 영향받았다. 1914년 그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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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알렉산더 페트로비치 소콜로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10:16
▪러시아의 아카데미 스타일 초상화 화가. 그의 형제 표트르와 파벨도 유명한 화가이다. 소콜로프의 부친도 유명한 초상화 화가였고, 알렉산더 브륄로프, 칼 브륄로프가 그의 아저씨이다. 18세때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했고, 2년후 황립예술학교로 진학했다. "미술가" 칭호를 받고 부친의 뒤를 이어 수채화 초상화에 전념했다. 1859년 형제인 표트르의 초상화로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881년 Peredvizhniki(이동파)에 참여한다. 여인들의 초상화 특히 마리아 마리아 표도로브나 등 황실 가족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1883년의 알렉산더 황제 3세와 왕비의 초상은 공식적인 대관식 앨범에 포함되었다. 1892-1907년에 황실아카데미에 있던 러시아 아카데미 미술 뮤지엄의 큐레이터였고,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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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반 포크히토노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00:29
정원사. 1900 우크라이나의 풍경화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활약했다. 부친은 러시아 제국의 군인으로 작위를 받었다. 그는 7살때 네덜란드 판화 작품을 모사해 집에 걸었다 한다. 모스크바의 농업대학에 다니던 중 소작농을 옹호하는 모임에 가담한 죄로 퇴학당하여 집으로 보내졌다. 1871년 오데싸 대학에 들어가 드로잉과 수채화를 배웠다. 그 때 가족과 제네바 여행을 하며 수채화 전시를 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이후 이태리를 거쳐 파리에 상주하며 Eugène Carrière(상징주의 화가) 아래 일하게 된다. 파리 살롱에 꾸준히 출품했고, 트레치코프가 그의 작품을 구매했고, 훗날 딜러 Georges Petit와 좋은 계약을 맺었다. 1881년 러시아 정부 명으로 러-터 전쟁의 종군화가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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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콘스탄틴 코로빈카테고리 없음 2018. 12. 16. 00:16
▪러시아의 인상파 화가로 후에는 아르누보 양식. Moskvoretsky bridge. 1914. 발렌틴 세로프가 그린 코로빈의 초상. 1891. 콘스탄틴 코로빈은 모스크바 상인집안 출신으로, 형 세르게이 코로빈도 화가였고, 유명한 화가로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 교수였던 일라리온 프리아니쉬니코프도 친척이었다. 그 학교에 진학한 코로빈은 바실리 페로프, 알렉세이 사브라소프와 함께 공부했다. 코로빈 형제는 여기서 발렌틴 세로프와 이삭 리비탄을 만나 평생 친구가 된다. 1885년 24세에 파리와 스페인 여행을 한 코로빈은 훗날 "파리는 충격이었다...인상주의자들...내가 모스크바 학교에서 혼나던 모든 것이 그들의 그림에 있었다." 스승 폴레노프가 코로빈을 아브람체보 서클에 소개하여, 빅토르 바스네초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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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콘스탄틴 소모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9:54
🚫🚫 ▪Mir iskusstva(예술의 세계-러시아 잡지)에 관여한 러시아 화가. 주요한 미술사가이자 에르미타주 뮤지엄의 큐레이터를 아버지로 두어, 어려서부터 18세기 미술과 음악에 관심이 깊었다. 1888-97년 황실미술학교에서 일리야 레핀의 지도를 받았다. Alexandre Benois와 친구가 되었는데, 그가 Sergei Diaghilev와 Léon Bakst가 "예술의 세계"지를 창건했을 때 소모프는 정기적으로 기고했다. 소모프는 대부분의 "예술의 세계" 회원처럼 동성애자였다. 와토와 프라고나르의 영향으로 수채화와 구아슈를 선호했다. 3년간 그는 18세기 초상화 형식으로 명작 "푸른 옷의 여인"을 그려냈다.(아래) 푸른 옷의 여인. 마르티노바의 초상. 1900년경. 1910년대에 소모프는 로코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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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보리스 쿠스토디에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7:35
▪러시아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 Troitse-Sergiyeva Larva 앞에서의 자화상. 1912 (우피지 소장) 쿠스토디에프는 지방 신학교의 철학, 문학사 및 논리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여, 그의 가족은 부유한 상인의 집 한 구석에 세를 살았다. 그때 어린 쿠스토디에프는 부유한 상인의 삶에서 간한 인상을 받았고, 후에 자신의 그림에 그 느낌이 표현된다. 상인의 아내. 1918. 쿠스토디에프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893-96년 보리스는 신학교에 다니느 한편 바실리 페로프의 제자였던 파벨 블라소프에게서 그림을 배운다. 그후 셍페테르부르그에서 황립예술학교의 일리야 레핀 스튜디오에 다니게 된다. "나는 쿠스토디에프에게 큰 기대를 갖고있다. 그는 재능이 있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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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드미트리 레비츠키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3:11
▪러시아 우크레이나의 초상화 화가. 우크레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서 목사이자 판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이 그의 첫 미술선생이었다. 1770년 초상화 6점을 셍페테르부르그 Imperial Academy of Arts에서 전시한 후 레비츠키는 초상화화가로 유명해져서,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초상화 교수가 되어 1788년까지 봉직했다. 1772-76년 레비츠키는 카테리나 2세의 요청으로 셍페테르부르그 특권층 여성교육기관인 Smolny Institute의 여성들을 그릴 기회가 있었다. 그녀들은 무용, 음악, 연극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레비츠키는 그림 주문을 많이 받았지만 수입은 낮았고, 1822년 87세로 빈곤속에 세상을 떴다. (글, 그림 출처는 Wiki) Portrait of E. N. Khr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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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표도르 바실리예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2:22
▪러시아의 풍경화가로 러시아 미술에 서정적 풍경을 소개했다. 자화상. 1873(사망하던 해) 표도르 바실리예프는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 4년후 부모가 결혼했지만 그는 항상 사생아로 여겨졌다 한다. 바실리예프는 12살부터 우편배달, 사본 필사, 미술품 재생의 일로 돈을 벌었고, 부친의 사후에는 가족을 부양했다. 1863년(13세때) 바실리예프는 미술학교의 야간학생으로 다니며, 그를 돌봐준 여러 화가를 만났다. 1866년 유명한 풍경화가 쉬시킨이 그의 누나와 사랑에 빠졌고, 틈틈이 바실리예프에게 풍경화를 가르쳤고, 후에는 크람스코이, 트레치코프 등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그러나 바실리예프가 자신의 그림과 강한 경쟁상대가 되자 쉬쉬킨은 집행부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이 상을 받도록 했다는 비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