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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표도르 바실리예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2:22
▪러시아의 풍경화가로 러시아 미술에 서정적 풍경을 소개했다. 자화상. 1873(사망하던 해) 표도르 바실리예프는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 4년후 부모가 결혼했지만 그는 항상 사생아로 여겨졌다 한다. 바실리예프는 12살부터 우편배달, 사본 필사, 미술품 재생의 일로 돈을 벌었고, 부친의 사후에는 가족을 부양했다. 1863년(13세때) 바실리예프는 미술학교의 야간학생으로 다니며, 그를 돌봐준 여러 화가를 만났다. 1866년 유명한 풍경화가 쉬시킨이 그의 누나와 사랑에 빠졌고, 틈틈이 바실리예프에게 풍경화를 가르쳤고, 후에는 크람스코이, 트레치코프 등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그러나 바실리예프가 자신의 그림과 강한 경쟁상대가 되자 쉬쉬킨은 집행부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이 상을 받도록 했다는 비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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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미콜라 피모넨코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43
▪우크레이나의 화가로 이동파 멤버. 도시와 시골의 노동자 계급의 풍속화로 유명하다. 율타이드(크리스마스) 점보기 ▪이콘화가인 부친의 조수로 일하며 이콘화를 배우다가 재능이 발견되어 키에프 미술학교에 학비면제로 입학했다. 1881년 그의 작품이 황립예술학교에 보내졌고, 그는 중등학교 미술교사 자격증을 땄다. 스승의 딸과 결혼한 피모넨코는 1884년 질병과 가난으로 인해 키에프로 돌아와 사립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1901년 키에프 폴리텤으로 옮겨 일생을 거기서 교육했다. 1906년 키에프아트스쿨 창립을 도우며 거기서도 가르쳤는데,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1897년 피모넨코는 성 볼로디미르 성당 장식을 맡았고, 그 결과 '세인트 앤 훈장'을 받았다. 1899년 이동파의 정회원이 되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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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알렉산더 모로조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39
▪러시아의 쟝르화 화가이자 판화가. 1851년 황립미술학교에서 Alexey Tarasovich Markov의 지도를 받았다. 1861년 "건초수확중 휴식"으로 금메달을 받았으나, 2년후 "14명의 반동"에 가담하여 학교의 고전적 스타일이 아닌 사실주의를 지향한다. 14명 모두 "2급예술가" 자격을 받고 퇴교한다. 그러나 훗날 모로조프는 "교회를 떠나며, 프스코프에서"로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교회를 떠나며. 1864 1874년부터 일생동안 모로조프는 황실법대에서 그림을 가르쳤고, 또한 "예술장려재단"에서도 교육을 맡았다. 그는 또한 이동파(Peredvizhniki)와 전시를 함께 하곤 했으나, 그들과 완전 동조하지는 않아서 정식회원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해외의 전시나 박람회에도 수차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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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파벨 페도토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18
▪"러시아의 호가스"라고 불리는 아마츄어 화가. 페도토프는 상페테르부르그의 황실근위대 장교였다. 당시의 장교들의 풍속대로 그는 플루웃도 배우고 Academy of Fine Arts의 야간 클래스에서 그림을 배웠다. 뛰어난 재주를 보이진 않았으나 부대에서 장교나 병영의 일상을 그려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의 그림에는 은근한 풍자가 담겨있었다. 자화상. Andrey, Grigoriy And Alexander DruzhininPavel Fedotov당시 군대 화가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지만, 페도토프는 참된 예술가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믿음에 그 직업을 마다했다. 1844년 군대를 나와 전업화가의 길을 걷는다. 군대의 안정된 수입이 없이 화가로서 가족부양까지 해야됨은 사실 부담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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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알렉세이 코르주킨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1:10
▪러시아의 쟝르화 화가. 금광 시굴업자의 집안에 태어났다. 어려서 그림을 배웠지만, 젊어서 공장에 일하다가 1858년에 황립미술학교에 진학했다. 3년후 금메달을 따서 장학금을 받았으나 1863년 아카데미의 고전적 형식을 배타하고 사실주의를 선호하는 "14명의 반동 학생"에 끼게된다. 그 결과 학교를 중퇴하고 "이동파"의 회원이 되었다. 1865년 "마을 묘지에서의 문상"으로 "1급 화가"가 되고 아카데미의 일원이 되었다. 일상적 그림 이외에 초상화와 종교화, 성당 벽화도 그렸다. 코르주킨은 1881년 알렉산더 2세의 시해를 직접 보았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쇼크를 받아 남은 일생동안 건강을 회복하지 못 했다. 숲속의 농촌소녀들. 1878 타운에서 돌아옴 마을 장에서 돌아옴. 전쟁에서 돌아옴. 새들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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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59
구애. ▪러시아 이동파 화가이자 상페테르부르그 예술아카데미 교수로 주로 초상화와 쟝르화를 그렸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고 재능이 발견되었다. 1876년 황립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학생이었지만 종종 집안의 장원에 그림을 그리려고 결석이 잦았다고. 집안의 바램을 저버리고 노동자계급의 처녀와 결혼을 한 것도 이때라 한다. 1880년 졸업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전시하며 주문도 받았다. 챠이코프스키와 Élie Metchnikoff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는 아브람체포의 정규 일원으로, 그의 레슬러같은 크고 건장한 몸매로 인해 다른 화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었다.(아래) 쿠즈네초프. 빅토르 바스네쵸프 작. 1889년 사고로 목발을 짚게되며 그는 저택의 스튜디오에서만 그림을 그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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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비톨드 비알리니스키-비룰라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32
▪19세기 말 러시아 사실주의의 전통을 이어온 20세기 "시적 풍경화의 대가." 모길레프 인근의 벨라루스 출생. 키에프 미술학교를 나오고 1889-1896년 모스크바 미술 조각 건축학교에서 수학했다. 비알리니스키-비룰라는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 고심했는데, 어려서 보고 자란 벨라루스의 자연--숲, 들판, 늪지, 강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그 단순한 모티브, 부드럽게 가라앉은 색조의 강렬함이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평생 그의 그림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내 삶은 자연과 연계되었다. 자연을 따라, 자연 속에서,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냈다."는 화가의 비망록 구절. 봄, 시냇물. 아브람체포. Spring. Stream. Abramtsevo. Etude. 1943 봄의 에멜랄드빛. E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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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폴리나리 바스네쵸프카테고리 없음 2018. 12. 15. 00:11
▪모스크바의 중세경치를 즐겨 그렸던 러시아의 화가이자 그라픽 아티스트 아폴리나리 바스네쵸프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자신의 유명한 형 "빅토르 바스네쵸프"의 지도를 받았다. 그와 빅토르는 1883년부터 아브라쳄포에 살았는데, 이때 아폴리나리는 폴레노프의 영향을 받았다. 1890년 코카사스 지방을 여행하며 거대한 자연에 감동하여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1898년에 유럽을 여행했다. 아폴리나리는 러시아의 자연을 그렸고, 후에 중세 모스크바 사회상을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풍경화를 창조했다. 1899년 이동파 회원이 되었고, 후에 러시아 예술가동맹의 창시자중 일인. (글과 그림 출처. Wiki) 고향땅. Rodina. 1886. 바스네쵸프가 고향과 땅의 의미를 새겨..